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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룩백 재개봉 관람 후기

by 희죤 2025. 12. 31.

스포일러 포함 ! ! ! ! !

나는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항상 한꺼번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마치 메이플에서 덮은 책 여러 번 보면 기분 좋고

은행 가는 김에 마트 가야 기분 좋은 그런 사람

잠시 밖에 나갈 일이 있어 나간 김에 룩백이 재개봉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어차피 할 것도 없고 근처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 끝나고 예매하고 당근에서 팝콘 쿠폰도 사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

그림체부터 연출, 다루는 소재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이 작품을 보고 이젠 머리가 깨져버렸다

조만간 단편선 모음집도 보러 갈까 싶고, 룩백 실사판이 나온다면 무조건 정가를 내더라도 영화관에서 보리라고

처음에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봤다

작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그냥 흔한 스토리 아닐까, 아 여기서 주인공하고 갈등을 빚겠네, 얘도 재능에 한계가 있네, 현실의 벽에 부딪히겠네 하는 그런 예측들로

하지만 러닝타임이 짧아서였는지, 생각보다 주인공의 시나리오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함과 기쁨을 느끼면서 금방 둘에게 동화됐다

난 이 장면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라지만 초등학생인 쿄모토도 저렇게 복도를 채울 만큼의 공책을 다 그려냈는데

나는 항상 저 공책의 한 권도 채우지 않고서 그림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시도 하기 무섭다며 포기하기 바빴다

그건 그림 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내가 저 공책만큼이라도 열심히 무언가에 도전한 적이 있었나?

항상 도망치기 바빴던 건 아니었었나?

그 생각이 들어 더욱 몰입하게 됐었다

흔히 말하는 히키코모리였던 쿄모토를 데리고 입상한 상금을 갖고서 도시로 나가 노는 모습, 그리고 그렇게 놀았는데도 5만원 정도 밖에 못 썼다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와도 같았다

손을 잡고서 함께 도심을 달려가는 모습은 가장 쿄모토가 밝아보이는 순간 중 하나였다

둘은 그렇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졸업하는 순간까지 함께했다

하지만 저 손을 잡고 달리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는 것을 보고

성인이 되고 나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 손을 잡은 모습을 다시 보여주며 손을 놓치는 것을 보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싶었다

성인이 되자 둘에게 장편만화 연재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쿄모토는

결국 쿄모토는 더 배우기를 원했고,후지노는 연재를 통해 명예를 원했다

결국 둘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지만, 후지노는 작가명을 그대로 둠으로써 쿄모토가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 같다

계속해서 어시스턴트가 바뀌는 모습을 보아 어떤 어시스턴트가 와서 성실히 임해도 쿄모토의 배경 실력과 합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쿄모토가 다니는 대학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에 일에 열중하던 후지노가 처음으로 멍하니 티비만을 보게 된다

사망자 12, 중상자 3

내심 차라리 중상자였으면, 사망자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똑같이 영화를 지켜봤으나

전화를 받지 않는 쿄모토와 다시 돌아오는 전화는 어머니의 전화였고, 후지노와 마찬가지로 나는 쿄모토의 죽음을 직감했다

결국 쿄모토는 세상을 떠났고, 절교까지는 아니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후지노는 쿄모토의 집에 찾아가 연신 후회한다

내가 그 때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쿄모토가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쿄모토가 죽지 않았을 텐데 라며

그 후 연출은 영화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굉장히 빼어난 연출이었는데,

슬픔과 분노에 찬 후지노가 처음에 나오는 4컷 만화를 찢어버리자

'나오지 마' 라는 글자가 적힌 컷이 작중 초반처럼 문 아래로 들어가버렸다

그런데 문 너머에는 빈 방이 아닌 평행세계의 쿄모토가 있는 방이 있었고

그 글자를 본 쿄모토는 숨 죽인 채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후 쿄모토는 원래 세계에서처럼 미대에 진학해 그림에 열중한다

허나 묻지마 살인범이 쿄모토를 목표로 삼고 곡괭이를 휘두르려 하나

평행세계의 후지노가 나타나 살인마를 발로 차 넘어뜨려 제압한다

이 모습을 보고 통쾌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세계가 내가 보던 원래 세계의 둘이 아니라는 것이 씁쓸하고 마음이 아팠다

무사히 쿄모토가 돌아간 후, 만화를 그리던 쿄모토의 방에 바람이 불어

후지노가 있는 세계선에 문틈으로 만화가 전해진다

그 살인마를 후지노가 평행세계에서 구해주는 코믹한 만화가

그걸 보고 후지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기만 한다

이렇게 평행세계라는 머나먼 거리를 문 하나로 막혀있지만 가까우면서도 먼 느낌을 묘사한 연출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슴이 텁텁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쿄모토와 후지노 둘이 즐겁게 그림을 그리던 일상이 나오면서

쿄모토가 마지막에 묻는다

그럼 후지노는 왜 계속 그리는 거야?

이 말에 대답하지는 않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연재를 재개한 후지노는 계속해서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극장판에서는 이 모습의 배경이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정적인 모습으로 엔딩이 나오는데

이 모습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비통한 일이 닥쳤음에도 계속해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후지노

묵묵히 그림만을 계속 그리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아마 확실한 건 올해 영화 중 이 영화가 최고였다

어쩌면 내 마음 속 한 부문에서는 인생에서 최고일지도 모르겠다

26년 중 실사화가 나온다고 하는데 꼭 보러 갈 거다

후지모토 너는 정말 단편의 악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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